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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으로 보는 한국인의 삶과 생각

색으로 보는 한국인의 삶과 생각

 

“하늘과 땅, 사람과 만물, 자연의 색이 있고 복식과 기용(器用)과 회화의 색이 있다. 그런데 숭상하는 색이 시대마다 다른 것은 무슨 까닭인가?”

이는 조선 중기의 문신 윤기(尹祁, 1535~1606)가 자신의 책 '무명자집문고(無名子集文稿)'에서 시대에 따라 색(色)의 선호도가 달라지는 이유에 물은 글이다.

이에 대한 답은 국립민속박물관의 “때깔, 우리 삶에 스민 색깔” 특별전에서 찾아볼 수 있다. 14일부터 내년 2월 26일까지 열리는 이 전시는 한국인의 삶에 투영된 다채로운 색의 상징과 색감과 시대적인 변화에 따라 선호하는 색의 변천사 및 그 뒤에 깔린 역사적인 배경, 민속학적인 의미를 다루고 있다.

시대적 변화에 따라 색에 대한 인식이 변화한 과정과 배경, 유물을 소개하는‘때깔, 우리 삶에 스민 색깔’ 특별전이 국립민속박물관에서 14일부터 내년 2월 26일까지 열린다. 하얀색을 주제로 한 흰색 두루마기와 저고리, 하얀색에서 검정색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유물과 함께 소개한 전시장 모습.

▲ 시대적 변화에 따라 색에 대한 인식이 변화한 과정과 배경, 유물을 소개하는‘때깔, 우리 삶에 스민 색깔’ 특별전이 국립민속박물관에서 14일부터 내년 2월 26일까지 열린다. 하얀색을 주제로 한 흰색 두루마기와 저고리, 하얀색에서 검정색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유물과 함께 소개한 전시장 모습.

전시는 크게 ‘단색(單色)’과 ‘배색(配色)’, ‘다색(多色)’의 3부로 구성되어 있다. 단색에는 한국인의 정서와 가치관이 담긴 대표적인 다섯 가지 색인 ‘하양=백(白)’, ‘검정=흑(黑)’, ‘빨강=적(赤)’, ‘파랑=청(靑)’, ‘노랑=황(黃)’색이 소개됐다.

각각의 색은 색과 관련된 언어적 표현, 전통적인 믿음·가치 등이 관련 유물과 함께 선보이고 있다. 하얀색의 경우 한민족을 일컫는 대표적인 표현인 ‘백의민족(白衣民族)’관련 기록과 흰색 두루마기, 저고리 및 조선시대 선비들의 절제와 소박한 생활을 보여주는 백자 등이 전시됐다.

하얀색은 자연스럽게 검정색으로 이어진다. 검정색 관련 전시에는 권위를 상징하는 갓, 죽음을 뜻하는 상복, 일제시대 흰옷 착용 금지령이 적힌 기록과 당시 교복, 두루마기 등이 선보였다. 황경선 학예연구사는 “하얀 색은 조선시대 선비뿐만 아니라 서민들 포함 전 계층이 선호했던 색”이라며 “백의민족이 한국인을 상징하기에 일제 강점기 조선인에게 흰옷 착용을 금지하고 검은 두루마기, 검은 교복 등을 강요했던 기록과 유물도 눈여겨볼 만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하얀색에서 이어지는 검정색은 죽음, 어둠, 권위를 상징하는 색으로 소개됐다. 검정색 전시유물을 바라보는 관람객.

▲ 하얀색에서 이어지는 검정색은 죽음, 어둠, 권위를 상징하는 색으로 소개됐다. 검정색 전시유물을 바라보는 관람객.

그러나 과거 한국인들이 하얀 색만을 선호했던 것은 아니다. 이는 파란색 전시에서 확인된다. 황 학예연구사는 “푸른색은 하얀색과 더불어 한국인의 속담이나 고사성어 등에 가장 많이 등장하며 한국인이 가장 선호하는 색”이라며 실제로 자연을 이상향으로 삼은 선인들의 세계관이 담긴 청자와 청화백자 등을 예로 들었다. 그 밖에도‘청춘’을 상징하며 남녀노소 인기를 누리는 청바지, 전통적인 푸른색 염색기법인 쪽빛 염색에 대해서도 살펴볼 수 있다.

파란색은 하얀색과 더불어 한국인이 선호했던 색이었다. 파란색 전시에는 자연을 이상향으로 삼은 선조들의 세계관과 청춘을 상징하는 청바지, 전통 쪽빛 염색 등이 소개되어 있다.

▲ 파란색은 하얀색과 더불어 한국인이 선호했던 색이었다. 파란색 전시에는 자연을 이상향으로 삼은 선조들의 세계관과 청춘을 상징하는 청바지, 전통 쪽빛 염색 등이 소개되어 있다.

빨간색은 적초의를 입은 흥선대원군 초상과 동짓날 붉은 팥죽, 다양한 모양의 붉은 복주머니 등과 함께 권위와 구복벽사(求福辟邪)의 의미로 설명됐다. 특히 한국전쟁 이후 공산주의의 상징으로 인식됐던 붉은 색이 2002년 월드컵 당시 ‘붉은 악마’ 응원 열풍과 한국인을 결속시키는 색으로 인식의 전환이 이뤄진 점도 응원 도구와 함께 소개됐다.

빨간색은 권위와 구복벽사 등을 의미했다. 적초의를 입은 흥선대원군 초상.

▲ 빨간색은 권위와 구복벽사 등을 의미했다. 적초의를 입은 흥선대원군 초상.

빨간색은 한국전쟁 이후 공산주의를 상징하는 색으로 인식되었으나 2002년 한일 월드컵을 계기로 한국인들을 결속시킨 색으로 인식이 바뀌었다. 빨간색에 대한 시대적 인식이 바뀐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붉은 악마 응원 도구.

▲ 빨간색은 한국전쟁 이후 공산주의를 상징하는 색으로 간주됐으나 2002년 한일 월드컵을 계기로 한국인들을 결속시킨 색으로 인식이 바뀌었다. 빨간색에 대한 시대적 인식이 바뀐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붉은 악마 응원 도구.

노란색은 고귀, 위엄, 신성을 상징하는 색으로 고종황제의 유품 및 황실 관련 자료와 함께 소개됐다.

▲ 노란색은 고귀, 위엄, 신성을 상징하는 색으로 고종황제의 유품 및 황실 관련 자료와 함께 소개됐다.

노란색은 ‘고귀’, ‘위엄’, ‘신성’ 등의 의미로 설명됐다. 누구에게나 허용된 색이 아니었기에 일반인의 생활 속에서 찾기 어려우며 고종 황제 및 황족 관련 유물과 함께 전시됐다. 황룡포를 입은 고종 황제(高宗皇帝, 1852~1919) 어진, 고종비 금책(高宗妃金冊) 등 황실 관련 자료를 만나볼 수 있다.

‘배색’ 전시에서는 음과 양을 적절히 조화하면 복을 얻을 수 있다는 선조들의 믿음과 관련된 유물이 소개됐다. 관람객들이 붉은 색과 푸른 색의 배색이 특징인 전통혼례복을 살펴보는 모습.

▲ ‘배색’ 전시에서는 음과 양을 적절히 조화하면 복을 얻을 수 있다는 선조들의 믿음과 관련된 유물이 소개됐다. 붉은 색과 푸른 색의 배색이 특징인 전통혼례복을 살펴보는 박물관 관계자들.

배색(配色) 전시에서는 오행(五行)을 따른 음(陰)과 양(陽)의 조화, 상생(相生)과 상극(相剋)의 어우러짐을 색으로 표현한 유물과 작품들이 선보이고 있다. 음과 양의 균형을 추구하면 복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했던 선조들의 믿음이 푸른색과 붉은색의 배색이 특징인 전통혼례복, 적흑의 강렬한 대비를 보여주는 이층주칠농, 흑백의 조화가 특징인 선비들의 옷 ‘학창의’ 등과 함께 소개됐다.

다색(多色)에서는 왕실뿐만 아니라 민간에 이르기까지 일상생활 및 중요한 의례에 나타난 한국인의 전반적인 색채에 대해 선보였다. 궁중의 ‘일월오봉도(日月五峰圖)’, 다양한 색의 조화가 특징인 색동 한복과 빛과 각도에 따라 영롱한 빛깔이 나는 자개 장식으로 만든 나전 칠 상자 등을 만나볼 수 있다. 그 밖에 영상 기기를 통해 직접 선호하는 색을 골라 자신만의 색동 한복을 만들어볼 수 있는 체험 코너도 마련되어 있다.

‘때깔전’에서는 영상 기기를 통해 색의 배색과 조화를 체험할 수 있다. 관람객이 영상기기를 이용해 직접 색을 선택해서 자신만의 가상 색동한복을 만들어보는 모습.

▲ ‘때깔전’에서는 영상 기기를 통해 색의 배색과 조화를 체험할 수 있다. 관람객이 영상기기를 이용해 직접 색을 선택해서 자신만의 가상 색동한복을 만들어보는 모습.

천진기 민속박물관장은 “한국인들은 흔히 ‘백의민족’이라고 해서 하얀색만 선호한 것으로 알고 있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며 "이번 전시에서는 선조들이 색에 담아낸 시대정신과 가치관을 확인하는 동시에 현재 우리의 색에 대한 다양한 관점을 확인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전시는 그 동안 잘 인식하지 못했던 우리 삶에 스민 색깔의 상징과 의미, 그리고 한국적인 색감을 찾고 느끼는 자리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윤소정 코리아넷 기자
사진 윤소정, 국립민속박물관